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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21 서울아트시네마 - 와카마츠 코지 초기걸작선 (4)
[右腦]우뇌/일상2006/05/21 16:55


어제 서울 아트 시네마에 다녀왔습니다.
일단 종각역에 내려서, 청계천 근처에 갔습니다.(이익훈 어학원에 볼 일이 있어서...)


청계천 강가에 있어서 찾기는 쉽더군요.

주말이라서 많은 분들이 나들이를 나오신듯...

너무 깔끔해서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뭐 나쁜 뜻은 아니죠. 깔끔하니 보기 좋네요.

오늘 청계천을 보러온 것은 아니니, 방향을 틀어, 파고다 공원쪽으로 갔습니다.

근처에서 전통 혼례식을 보여주고 있더군요.(인사동 근처라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것일듯...)


오늘의 목적지 서울 아트 시네마 입니다.
CGV나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달리, 뭔가 초라한 느낌이라서 안타깝네요.
영화관이 악기상가에 빌 붙어 있다는...

악기상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본 남산과 남산타워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는 와카마츠 코지의 초기 걸작선 중이었습니다.

오늘 볼 영화는 17세의 풍경 : 소년은 무엇을 보았는가? 입니다.
와카마츠 코지의 최근(2005) 작품으로 야구방망이로 어머니를 때려죽이고 도주했던 17살 소년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죠. 소년이 16일 동안 날마다 100km씩 달려갔던 에너지의 원천과 북쪽으로 여행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용만 들어도 무척 지루할 것 같죠?)

어쨌든 표를 끊고, 상영시간까지 1시간 정도가 남아서 인사동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영원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이상원님의 개인전이 열려있더군요.(입장료 1000원)
주로 인도의 노인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장지에 수묵화로 바탕을 그린뒤, 유화물감으로 색을 덧칠하는 기법의 그림들입니다.
물과 기름, 어떻게 보면 전혀 조화롭지 않은 두 소재가 조화를 이루어서, 노인의 표정과 그에 담긴 삶의 흔적을 실감있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한 인사동의 명물 쌈지길...
말만 들었는데, 실제로 와본 것은 처음입니다.
지상 4층, 지하 2층의 건물에 72개의 각종 공예품·기념품 업체, 문화상품점, 갤러리 등이 들어섰는데 여타 쇼핑몰과 달리 나선형으로 옥상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상점들을 만날 수 있고 빙글빙글 3바퀴를 돌아 옥상에 올라서면 인사동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하네요 ㅡ.ㅡ/
(귀찮아서 안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가게 되면 올라가야죠.)
뭔가 허술해 보이는 인터리어가 인상적입니다.


다시 서울 아트 시네마로 왔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영화내용은...소년이 나오고, 영화 끝날때까지 자전거만 탑니다.
무척 지루하지만,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어른이 만든 길을 벗어날 수 없는 소년의 슬픔이라던지...
소년이 왜 어머니를 야구방망이로 죽이게 되었는지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로 도주하는 모습만을 계속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였습니다.
제일조선족 할머니의 눈물어린 한오백년(거의 노래 전체를 다 부르는 듯...)도 인상에 남고...
눈 덮인 일본의 풍경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는 소년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의 북쪽끝인 아오모리현에서 자전거를 던져버리고, 악을 쓰는 소년은 무엇을 보았을지...


영화끝나고, 와카마츠 코지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가운데 계신 할아버지)


사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이분 꽤 특이하신 분입니다.
60년대에서 70년대 좌파 투쟁의 자장속에서 혁신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고, 특히 로망 포르노=.=/ 영화의 거장입니다. 성과 폭력의 문제를 빌어서 일본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 비판의 정도가 워낙 강렬해서, 미국같은 경우는 이분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입국금지조치 중이랍니다. 우리나라도 입국금지였는데, 풀렸다고 하네요.

감독과의 대화 내용중에서...

질문자 : 감독님의 17세 시절과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와카마츠 코지 : 부모님의 돈을 훔쳐서, 동경으로 무작정 왔다. 튀김과자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같이 일하던 19살 소년이 기름에 빠져서 죽었다. 근데 사장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소년의 주검을 가족들에게 인계해버리고는 나 몰라라 했다.
난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짧고 굵게 살아야겠다.
그래서 야쿠자에 들어갔다.(쿨럭...이분 야쿠자 출신인가!!!)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고, 영화를 찍을때 카메라 옆에서 일반인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무섭게 인상을 쓰면서, 그냥 서 있는 일을 했다.(나름대로 영화와 관련이 있는 ㅡ.ㅡ)
야쿠자 활동중에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다.
경찰들은 나에게 인간이하의 취급을 했다.
난 화가 났다.
나가면 복수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이분 무섭다...)
겨우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복수의 계획을 세웠다. 정말 복수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되니까...(웃음)
글을 쓰기로 했다. 근데 5~10장 쓰면 지쳐버렸다.
그래서 영화로 표현하기로 했다.
(이런 어이없는 계기가 ㅡ.ㅡ)
무작정 영화제작자의 집에 가서 농성을 했다.
결국에는 그 제작자의 제자로 들어가서 잡일을 했다.(그때 나이 21살)
23살에 조감독을 했다.
25살에 감독이 되어서 <달콤한 함정, 63년작>을 만들었다.
난 나의 꿈을 이루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경찰관을 죽이는 장면을 넣었다.-.-/
게다가 대박이 났다. 그 이후로 계속 영화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왔다.

....ㅡ.ㅡ/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그의 영화는 이후 20년간 10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올해로 70세가 된 지금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꽤 정정하심...)
하지만 영화를 만들 돈이 없단다.(정확히 말하면, 와카마츠 코지 감독에게 돈을 대주려는 제작사들이 없다고 한다.)
그는 굴하지 않고 3억엔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1인당 3만엔씩 모아서, 돈 모이는 데로 바로 제작에 들어갈 꺼라고 한다.

70세에 이런 열정을 가진 영화감독이라니...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언제 기회(나에게는 영화감독의 기회)가 올지 모른다.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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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에다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2006/05/22 09:29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익훈에는 왜?

    2006/06/01 11:31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냥 구경, 물론 학원 수강할 생각은 없고...(거리 문제도 있고)
      AP 뉴스나 해야봐겠다...랄까.

      2006/06/01 21:09 [ ADDR : EDIT/ DEL ]
  3. 거 생각 잘했다. AP 뉴스 해라.

    2006/06/01 22:28 [ ADDR : EDIT/ DEL : REPLY ]